한글의 수난사1. 최만리의 반발(!!!!) 조선에는 새글자가 필요 없사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에 처하였다. 한글 창제에 찬성하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
한자가 있는데 새로운 글자가 왜 필요하냐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고 이런 내용을 담은 상소또한 매우 많았다.
더웃 놀라운 것은 새종대왕이 깊이 신이하던 집현전 학자들도 한글 창제를 거세게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의 반발이 특히 심했는데, 최만리는 '한자를 버리고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문화인으로서의 긍지를 버리는 일일뿐만 아니라 후환(어떤 일로 말미암아 뒷날 생기는 걱정과 근심)을 만드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한글의 수난사2. 훈민정음? 언문은 어리석은 백성이나 쓰는 천한 글자다!
세종대왕의 확신과 끈기로 한글이 창재됐으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세상을 뜬 후,한글 보급 사업을 맡아 하던 언문창이 폐지됐다.
한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라는 뜻의 훈민정음에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사용하는 천한 글'이라는 의미의 '언문'으로 바뀌었다.
부녀자들 사이에서 널리 쓰여 '암클'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언서,반절,아랫글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양반들은 여전히 한자만을 사용했는데 심지어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은 한글 상소문을 읽지 못해 한문으로 번역시키기도 했다.
한글의 수난사3.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어 없애버리고 말겠어
1942년 일제가 최현배,이희승 등 한글학자 33인을 검거하고,편찬 중이던 <조선어 큰사전>의 원고를 강제로 빼앗았다. 이것이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학술 단체를 가장한 불순 단체"라고 꾸며 회원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일본사법부가 조선어학회 사건 재판에서 낭독한"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은 조선 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라는 재판 결정문을 통해서도 한글에 대한 일제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있는 우리나라글 한글
발행년도는 1443년인데 약 650년 되었네요.
650년의 역사를 지닌 한글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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